세계적 감독이 한국에 보내온 편지, 거장의 위엄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한 장면ⓒ BIM Distribuzione

 

장면 하나. 1996년 5월,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 시사회가 열렸다. 그의 작품이 대한민국의 스크린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순간이었다. 의용군으로 참전한 영국인 청년의 시각으로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그린 이 작품은 스페인 민중 혁명이 내부의 분열로 좌절됐다는 사실 인식을 뚜렷이 하는 동시에 “투쟁은 계속된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세계 1등 좌파감독이자 ‘열혈 청년’ 리얼리스트였다.

더불어 이 작품은 이 순수하게 세상을 바꾸려던 이상주의자가 남긴 편지와 사진들이 손녀에게 전해지는 순간, 그러한 혁명과 내일에 대한 믿음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랜드 앤 프리덤>은 10년 뒤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전편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냉정한 역사·현실 인식과 투쟁과 연대를 향한 낙관주의가 공존하는.

그 1996년 여름, 김영삼 정부는 한총련 대학생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1990년대 예술영화 붐 속에 그 해 홍상수, 김기덕 감독의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과 <악어>가 동시에 도착했으며, 정성일·허문영·김소영 평론가는 일제히 그해의 베스트 중 한 편으로 이 <랜드 앤 프리덤>을 꼽았다.

장면 둘. 2008년 9월, 영화 <자유로운 세계>의 개봉 당시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켄 로치는 놀랍도록 명료하고 이성적인 감독이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영국으로 유입된 이주노동자 문제를 그린 이 작품에 대해 켄 로치 감독은 이렇게 코멘트 했다. 작품 속 여성 주인공은 ‘을’의 위치에서 이주노동자 사무소를 운영하는 ‘갑’의 위치로 이동하며 심경의 변화를 겪는 인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키우는 것은 강경 우파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들이 야기하는 인종 문제는 좌파들의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좌파들은 자국 국민과 이주자들 사이에 화합을 이루어야 하니까.”

 영화 <자유로운 세계>의 한 장면

영화 <자유로운 세계>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랜드 앤 프리덤>부터 <나, 다니엘 블레이크>까지

그로부터 딱 8년 뒤, 영국은 ‘브렉시트’를 전 국민투표를 통해 현실화했다. 그리고 2008년 새롭게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와 광우병 미국 소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을 드는 국민들에게 ‘물대포’를 선사하고 ‘명박산성’을 쌓았다.

장면 셋. 2014년 3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됐지만 끝내 개봉하지 못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만 앵콜상영된 <1945년의 시대정신>은 당시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을 향한 경종과도 같았다. 이 노장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흔치 않은 다큐멘터리였으며, 흑백과 컬러, 그리고 과거 뉴스필름과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섞은 전통적인 다큐라 할 수 있다.

켄 로치는 1945년 영국 노동당 창당 전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며 공공 소유와 분배, 그리고 공동체의 본래 정신에 대해 설파한다. 정치인과 노동자들이 합심해 어느 나라도 이룬 적 없던 복지 사회를 이뤄내기 위한 당시 영국 노동당과 당원들의 열망을 회고하는 한편 그렇게 이룩한 철학과 가치를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수상과 그 ‘대처리즘’이 어떻게 깨부쉈는지를 낱낱이 고발한다.

먼 이국땅의 과거 ‘역사적 현장’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자성하는 행위의 가치는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는 ‘송파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 등으로 인해 보편적 복지와 사회 안정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들끓는 반면 정권 차원의 ‘철학 부재’가 도마 위에 오르던 시기였다. ‘사회적 타살’에 대한 문제제기도 커졌던 시기였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켄 로치는 이 다큐의 제작 의도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소수가 다른 이들을 착취하며 부유해져서는 안 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생산과 용역이 모두의 이익이 되는 공동 소유의 개념이었다. 그것이 다수에 의해 지지된 고귀한 이념이었다. 그것이 바로 1945년의 시대정신이었다. 이제 그 정신을 다시 떠올릴 때가 되었다.”

 켄 로치 감독

켄 로치 감독ⓒ 영화사 진진

팔순 ‘청년’감독이 불러온 희망과 연대의 노래 

장면 넷. 그리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를 접한 적지 않은 관객들이 ‘2016년의 영화’로 꼽은 이 작품은 1945년의 시대정신이 작금의 현실에서 얼마나 훼손됐는지, 또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제도가 이미 잠식해버린 사회에서 ‘민중’은 어떻게 고통 받고 스러져가는지를 전형적인 켄 로치식 드라마 화법으로 고발한다. 복지 시스템의 맹점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장년 남성과 20대 여성(이자 어머니)의 연대는 예전처럼 쉬이 이뤄지지 않는다.

여전한 냉정한 현실 인식 위로 켄 로치가 일궈낸 가슴 시린 분노와 감동의 순간은 예의 그 낙관적 전망이나 일말의 희망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끝을 맺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관객들은 촛불 광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 촛불을 든 시민 개개인은 더 이상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살지 않겠다며 “내가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외쳤고, 부패한 권력자를,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전무후무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우뚝 섰다. 그에 앞서 켄 로치는 한국관객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한 편의 영화로 우리가 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건 언제나 놀랍습니다. 영국 정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요. 우리는 많은 나라에서 같은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씩은 다를지라도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들이지요. 아마 당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들의 영화를 봐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에게 희망과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팔순을 넘긴 이 ‘청년’감독은 여전히 희망과 연대를 노래한다. 그렇기에 얼핏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곡점을 맞지 않았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켄 로치야말로 전 인생과 영화세계에 걸쳐 노동과 복지, 사회 변혁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 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영화사 진진

영국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노동계급 출신 아버지가 희망했던 법조인의 길을 버리고 BBC에 입사했다. 앞서 노동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던 켄 로치 감독은 영국사회의 검열과 보수주의 관행에 맞서는 작품들을 국영방송 BBC에서 연출했고, 이와 무관하지 않은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데뷔작 <불쌍한 소>(1967)와 차기작 <케스>(1969)로 단숨에 주목받는 리얼리즘 감독의 대열에 올라 섰다.

이후 <랜드 앤 프리덤>까지 30여 년 동안 11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유럽의 복지 시스템과 노동문제, 계급문제를 좌파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스페인 내전을 그만의 방식으로 회고하고 또 현재로 연결 짓는 <랜드 앤 프리덤>은 그의 분기점과도 같은 작품이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 <보리밭에 부는 바람>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칸 영화제는 다시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함으로서 이 노장 감독에게 경배를 바쳤다.

영원한 현역 켄 로치의 작품 세계

영화적인 치장이나 미학에 매달리지 않는 우직한 리얼리즘이야말로 켄 로치 영화의 실천적인 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주변 캐릭터의 입을 빌린 약간의 설교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현실 범주 안에 들어있는 ‘비전’에 가깝다. 그의 리얼리즘은 그래서 ‘상류층’이나 ‘권력층’ 인물에 관심이 없다. 일용직과 실직자야말로 켄 로치 영화들의 단골 주인공들인 이유다.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직 가장의 이야기인 <레이닝 스톤>(1993)에 앞서 만든 <하층민들> 역시 일용직 노동자 커플의 일상을 담담히 그린다. 그가 그리는 청년들은 대부분 백수(<엔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키스>, 2013)거나 보통의 양부모 가정과는 거리가 멀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10대(<달콤한 열여섯>, 2002)이기 일쑤다. 심지어 멕시코에서 넘어온 일용직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회사의 실직 처분에 맞서 파업을 벌인다(<빵과 장미>, 2000).

이들 실직자들은 크나 큰 운명이나 휘둘리기는커녕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시스템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마모되는 인간형들이다. 켄 로치는 때로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희망도 주지만, 대체로 냉정을 잃지 않는다. 어설픈 영화적인 봉합이나 해피엔딩 따위는 현실엔 없다는 듯이, 노동 계급인 주인공들이 실제로 맞닥뜨릴 현실 위에서 열린 결말을 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듯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시민 선언’의 감동 이후 주인공에게 찾아 온 급작스러운 죽음이 크나 큰 비감을 주는 것도 그래서다.

켄 로치는 더불어 작금의 브렉시트나 난민의 시대를 경고해 왔다. 그건 민족주의가 알게 모르게 흥하는 유럽의 이면을 파악한 노장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에서 인간의 얼굴을 지우고 이윤만으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에서 반기를 들어왔던 그의 좌파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앞서 소개한 <자유로운 세계>는 그러한 켄 로치의 선견지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 영국인 중산층 여성과 중동계 상류층 남성과의 사랑을 그린 <다정한 입맞춤>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나타난 켄 로치식 멜로드라마였고, <빵과 장미>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응원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자유로운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대비되는 지극히 역설적인 제목이지만, 그 세계 안에서 노동 계급 끼리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한 장면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한 장면ⓒ (주)동숭아트센타

마지막으로, 켄 로치의 작품세계의 다른 축을 역사드라마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1930년대 유럽 내 계급 연대와 한계(<랜드 앤 프리덤>, 1994), 영국 노동당의 출범과 비전, 그리고 현재(를 그린 다큐멘터리 <1945년의 시대정신>), 아일랜드 혁명 시기의 민족주의와 계급주의의 갈등(<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06), 대공황 시기 한 사회주의자가 펼쳐낸 조직과 연대의 기록(<지미스홀>, 2014)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켄 로치식 학습과 배움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10여 년 전 이메일 인터뷰에서 켄 로치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여주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실제 세상을 반영할 뿐이다.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있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무슨 문제를 다룰까’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만약에 그런 식으로 계속 영화를 만든다면 선전(Propaganda)일 뿐이다. 꼬여 있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영국과 유럽 내 시스템에 대한 공격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켄 로치의 영국 내에서의 평가는 상당히 엇갈린다고 할 수 있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리얼리스트는 원래 우군보다 적군이 많은 법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현실과 전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쉼 없이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를 창작해 왔다. 아마도 이제 그와 견줄만한 ‘우파’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밖에 없으리라. 이렇게 50여 년간 일관된 작품 세계를 추구한 이 1936년생의 노장 켄 로치는 여전히 차기작을 궁금하게 만드는 영원한 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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