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의 흑역사? 아니 역작!

‘흥행의 신’ 제임스 카메론에게도 ‘흑역사’가 있으니 1989년 작 <어비스>다. 상종가를 달린 그에게 폭스사가 전례없는 큰 투자를 했는데 흥행에서 참패했다. 평단의 평가도 호불호가 갈렸거니와 그의 과도한 완벽주의가 영화계에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영화 <어비스> 포스터ⓒ 20세기폭스?

<아바타>와 <타이타닉>으로 영화 흥행 역사의 신기원을 이룩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 <타이타닉>이 12년 동안 가지고 있던 세계 영화 흥행 1위를 <아바타>로 갈아치웠던 바 있다. 지난해 4편의 영화가 이 기록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스타워즈> 정도가 근처까지 도달했을 뿐, 성공하지 못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30여 년 전 일찌감치 흥행 감독의 싹을 보였는데, <터미네이터 1, 2> <에일리언 2> <트루 라이즈>가 그 영화들이다. 그들은 흥행뿐만 아니라 평단의 호평도 받아 지금까지도 반드시 봐야 할 영화 리스트에 꼽히곤 한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타이타닉>으로 제70회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등 11개 부문을 휩쓴 적도 있으니 말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흑역사’이자 최고의 영화

그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으니 1989년 작 <어비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 2>로 상종가를 달린 그에게 폭스사가 전례 없는 큰 투자를 했지만, 흥행에서 참패했다. 2년 뒤 <터미네이터 2>로 재기에 성공하긴 하지만.

평단의 평가도 호불호가 갈렸거니와 그의 과도한 완벽주의가 영화계에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영화를 찍는 도중에 이혼도 했다. 여러모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인생에 큰 획을 그은 영화라 하겠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어비스>는 제임스 카메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나아가 영화 기술도 최소 몇 차원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그에게 영화는 예술이 아니고 과학이었던 걸까? 장장 4편까지 기획되어 있다는 흥행과 3D의 신기원 <아바타> 시리즈는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었던 거다. 보는 이에겐 여러모로 믿기 힘든 영화라 하겠다. 사실, 보기도 쉽지 않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제임스 카메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뽑히는 <어비스>. 나아가 영화 기술도 최소 몇 차원은 끌어올렸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그에게 영화는 예술이 아니고 과학이었던 걸까. 영화 <어비스>의 한 장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제임스 카메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뽑히는 <어비스>. 나아가 영화 기술도 최소 몇 차원은 끌어올렸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그에게 영화는 예술이 아니고 과학이었던 걸까. 영화 <어비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

영화는 미국의 핵잠수함이 침몰하면서 시작된다. 소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무엇에 의한 것이었다. 미 해군은 생존자 수색의 명목 하에 네이비실을 파견하며 민간석유시추선 딥코어와 연합작전을 펼친다. 딥코어 책임자 버드와 직원들은 터무니없는 작전에 반색을 표하지만, 미 해군의 반 협박 반 회유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한다.

한편 버드는 하필 가장 함께하기 싫은 사람과 함께 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전 부인 린지였다. 린지는 딥코어를 만든 이였고, 그 누구보다 바닷속을 잘 아는 전문가였다. 미 해군은 그녀를 네이비실과 함께 투입한다. 이 작전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 버드 입장에서 껄끄러운 것만은 분명했다. 역경을 함께 이겨내면 가까워지는 법,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까?

제임스 카메론이 하고자 했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

장장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너무 평화로워 지루하기까지 한 초반을 지나 예상 못 한 태풍으로 사고를 당해 딥코어가 심해로 추락하는 부분, 네이비실 책임자 커피 중위가 은밀한 임무에 과도하게 몰입되어 딥코어 일행과 격렬하게 대립해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 그리고 커피 중위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한계를 넘어서는 심해까지 내려가는 버드와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로 정녕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사랑의 위대함', '인간들끼리 싸우지 말라', '심연의 공포' 등. 과연 잘 전해졌을까? 영화 <어비스>의 한 장면.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로 정녕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사랑의 위대함’, ‘인간들끼리 싸우지 말라’, ‘심연의 공포’ 등. 과연 잘 전해졌을까? 영화 <어비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로 정녕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는 ‘인간들끼리 싸우지 말라’는 것인데, 그건 ‘사랑의 위대함’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다만 그 부분이 영화 전체에 해당해서 자세히 언급하기가 꺼려지고, 또 다름 아닌 그 부분이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지나가도록 하겠다.

다른 하나는 제목에 따라 ‘심연의 공포’ 정도가 되겠다. 영화 절반 이상이 물속인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녕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답답하다가 공포가 밀려오기도 한다. 제대로 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기분이랑은 정반대의 공포이다.

영화에서는 네이비실 책임자 커피 중위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윗선과의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극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극비 임무에 대한 부담감, 눈앞에 보이는 적인 소련에 대한 맹목적 반감, 과도한 수압과 폐쇄된 공간으로 인한 정신분열 증세까지. 오랜 세월 심해에서 작업해왔던 이들도 힘들어하는 상황, 아무리 특수부대 책임자라지만 그곳에서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는 돌아버린다.

한편 강인한 정신력과 리더십의 소유자인 버드도 한 유형을 대표한다. 극단의 상황에 부닥칠수록 더더욱 강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극히 이상적인 인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급기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에 감명받지 않을 이가 누구인가. 동물도 인간도 심지어 외계인도 감명받지 않을까.

심연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지 말라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너무 깊게 들여다본 것 같다. 영화를 너무 완벽하게 만드려 했다. 실로 영화는 여러 면에서 완벽하게 나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영화 <어비스>의 한 장면.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너무 깊게 들여다본 것 같다. 영화를 너무 완벽하게 만드려 했다. 실로 영화는 여러 면에서 완벽하게 나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영화 <어비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

누구나 한 번쯤 ‘심연’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굳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들어가기도 하고 오랫동안 들어가기도 한다. 누구는 들어갔다가 평생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누구한테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더할 나위 없이 좋게 작용하기도 하고, 치유하지 못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당연히 전자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범하기에 좋게만 작용하기 힘들다. 어떤 식으로 경험했든 그 기억이 평생 결코 좋지만은 않게 따라 다닌다. 그때마다 어떻게든 잘 이겨내야 하는 게 우리들의 숙명이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건 한 마디 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 말과 비슷하다. ‘심연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지 말라’는 것이다. 그만큼 심연도 당신을 깊게 들여다보려 할 거니까.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너무 깊게 들여다본 것 같다. 영화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 했다. 실로 영화는 여러 면에서 완벽하게 나왔다. 그 방면의 심연을 정녕 깊게 들여다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만약 영화가, 백 번 양보해 상업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다큐멘터리였다면? 아마 방향을 조금만 틀었어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실제로 그는 <어비스>를 만든 25년 후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함께 <제임스 카메론스 딥씨 챌린지>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그야말로 제대로 심연을 들여다봤다. 그는 그곳에서 어떤 걸 보고 느꼈을까? 반가웠을까, 씁쓸했을까, 후련했을까, 두려웠을까, 기가 막혔을까.